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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문장 요약
직분은 감투가 아니라 복음을 바로 세우기 위해 맡겨진 책임이며, 그 무게를 감당할 진정한 순종과 용기가 있을 때 비로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직분자가 된다.
직분의 의미를 다시 묻다
성경은 교회 안의 직분에 대해
분명한 기준을 제시한다.
- 디모데전서 3장 — 감독·집사의 자격
- 디모데후서 4장 — 맡은 직무를 다하라
- 사도행전 20장 — 장로들에게 양을 맡기시는 성령
그러나 현대 교회는
성경이 말하는 최소한의 직분보다
훨씬 많은 직책을 만들어 왔다.
자격에 맞지 않는 이들에게까지
직분을 남발하는 상황도 적지 않다.
그 결과,
직분은 신앙의 유익이 되기보다
경쟁과 갈등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베이직교회처럼
직분 제도를 두지 않는 곳도 있다.
오용되는 직분, 그러나 한 가지 예외
나는 ‘직분 남발’에 반대하는 입장이지만,
최근 하나의 긍정적 사례를 보았다.
야당의 젊은 최고위원 한 사람이
정치토론 프로그램에 출연했는데
그는 공손하면서도 단단한 원칙으로
논리를 전개해 나갔다.
사회자가 물었다.
“높은 자리에 오르면 대부분 변하던데
왜 당신은 달라지지 않았나요?”
그는 이렇게 답했다.
“저는 제 주장에 확신이 있지만
말에 힘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당대표를 뽑아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할 말을 안 하고
좋은 게 좋은 거라며 변할 거면
그 자리에서 내려와야죠.”
바로 이것이다.
감투를 쓰는 이유는
옳은 일을 바로 하기 위해서지
자기 영달을 위해서가 아니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사도 바울의 태도가 떠오른다.
바울이 왜 자신을 ‘사도’라 반복했는가
바울은 서신 곳곳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사도 된 나 바울”이라고
자신의 직분을 강조했다.
그 이유는 단순했다.
자기 말을 강하게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복음의 말에 힘이 실리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예수 믿는 자들을 핍박하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어려운 존재였다.
그래서 사도직의 권위를 분명히 밝혀
복음이 약해지지 않도록 한 것이다.
이 점에서,
앞서 말한 젊은 대표의 태도와 정확히 닮았다.
직분은 자리 보전이 아니라 책임이다
교회에서 장로·권사·안수집사라는 직분을 받는다는 것은
단순한 “직책”이 아니라 책임의 무게를 받는 것이다.
특히 중요한 것은 이것이다.
만약 교회가 예수님이 명하신 ‘복음 전도’보다
세상적인 다른 일과 프로그램에 더 집중하고 있다면,
직분자는 교회가 본래의 길로 돌아오도록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말해야 한다.
입을 닫고 자리만 지키는 것이 아니라
말해야 할 때 말하는 것이
그 자리에 있는 이유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대부분 조용히 침묵한다.
아부가 순종으로 보이고,
자리 보전이 충성으로 포장된다.
그러나 그럴 거라면
그 자리를 차지할 이유가 없다.
직분의 무게를 견딘다는 것
어떤 중책을 맡는다는 것은
그 계급장의 무게를 견디는 일이다.
책임과 부담을 느끼며
하나님 앞에서 올곧게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직분을 받기 전에는 열심히 봉사하다가
직분을 받은 후에는
손을 놓고 쉬어 버리는 일도 있다.
그래서 ‘직분을 딴다’는 말까지 생겼다.
이런 문화라면
차라리 직분을 없애는 것이
교회의 건강에 더 유익할지도 모른다.
주님의 삼중 직분 — 선지자, 제사장, 왕
신자는 모두
주님의 삼중 직분을 함께 받는다.
- 선지자
- 제사장
- 왕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제사장과 왕의 유익은 누리려 하면서
‘선지자’의 역할은 피한다.
선지자는
나단처럼 왕 앞에서도
목숨을 걸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하는 자리다.
바울이 돌에 맞아 죽을 뻔하면서도
다시 복음을 전하러 돌아간 것처럼
선지자의 역할은 희생을 요구한다.
감투가 아니라 사명
이런 마음으로 직분을 받는다면
나는 장로·권사·안수집사를 충분히 지지한다.
그러나 이런 마음이 없다면
그 자리를 고집하지 말고
속히 내려와야 한다.
오늘 한국 교회가 흔들리는 이유는
일반 성도가 아니라
직분의 역할을 잃어버린 리더들 때문이다.
결론 — 직분은 은혜이자 책임이다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요구할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
— 누가복음 12:48
직분은
특권이 아니라
사명의 무게다.
그리고 우리는 물어야 한다.
“나는 이 자리의 무게를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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