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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줄 요약
하나님이 침묵하시는 순간에도 믿음으로 끝까지 붙잡고 나아갈 때, 이미 주신 은혜를 기억하게 하시고 그 믿음의 걸음을 통해 당신을 성장시키신다.
신자들, 특히 주의 종들은 사역하다 보면
의도치 않게 사람들에게 오해를 받고
심지어 원망까지 들을 때가 있다.
그럴 때 우리는 이렇게 말하며 스스로를 다독인다.
“하나님만 붙잡고 흔들리지 말자.
언젠가는 나의 진심을 알아주는 날이 오겠지.
하나님이 다 풀어주실 거야…”
그래서 인내하며 버티는 시간,
기도하며 기다리는 기간이 있다.
그런데 문제는,
가끔 하나님도 침묵하신다는 것이다.
내가 이렇게 고통받고 있는데
그냥 내버려 두시는 것 같은 때와 기간이 있다.
목사든, 전도사든, 평신도든
그 시기를 견디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간절한 기도에 응답이 오고,
어떤 ‘싸인’이라도 보여주시면 버틸 수 있을 것 같은데
아무 응답이 없을 때
마음 한 구석에서 이런 의심이 고개를 든다.
“하나님, 정말 살아 계시기는 한가요…?”
이 시간이 길어지면
사람은 포기하고 싶어진다.
인간의 인내력은 하나님과 달라서
분명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자꾸
자력으로 해결하려는 시도를 한다.
될 것 같지 않으면서도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뭐라도 해 보려 한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크게 쓰임 받은 선지자도
그와 비슷한 모습을 보인 장면이 나온다.
수넴 여인과 엘리사, 그리고 하나님의 침묵
열왕기하 4장의 장면이다.
수넴 땅에 한 여인이 있었다.
엘리사가 그 지역을 지날 때마다
그 여인은 선지자를 극진히 섬기며
머물 방과 식사를 제공했다.
엘리사는 그 섬김에 감사하여
여인에게 아들을 주시겠다는 약속을 전했고,
실제로 다음 해에 아들이 태어났다.
그 아들이 잘 자라다가
어느 날 갑자기 머리가 아프다고 하더니
죽고 만다.
이 여인은 아이를 엘리사의 침상에 눕혀 두고
곧장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에게 달려간다.
그리고 통곡하며 이렇게 말한다.
“내가 내 주께 아들을 구하더이까?
나를 속이지 말라고 하지 아니하더이까?”
충분히 할 만한 말이다.
차라리 애초에 주지 말지,
주셨으면 왜 데려가시느냐는 항변이다.
그때 엘리사가 말한다.
“여호와께서 내게 숨기시고
이 일을 내게 알리지 아니하셨다.”
즉, 엘리사도
이 사건에 대해 아무런 사전 계시를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사람에게는 원망을 듣고,
하나님은 아무 말씀도 안 하신다.
엘리사의 마음이 얼마나 난처하고
곤란하고, 또 고통스러웠을지
충분히 짐작이 된다.
지팡이를 보낸 엘리사 —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 마음
당황한 엘리사는
사환 게하시를 시켜
자기 지팡이를 들고 아이에게 먼저 가게 한다.
“사람을 만나거든 인사하지 말고,
인사받더라도 대답하지 말고,
내 지팡이를 그 아이 얼굴에 놓으라.”
이 말을 들은 수넴 여인은
엘리사 자신이 아니면 안 되겠다고 고백하며
그를 붙든다.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과
당신의 영혼이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리이다.”
그 말은 곧,
“나는 당신을 믿습니다”
라는 신뢰의 고백이다.
문제는,
정작 엘리사 본인은
자신이 없는 상태였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아무 말씀도 없으시고,
지팡이를 보내보라고 한 것도
정확한 계시라기보다
‘뭐라도 해 보려는’ 인간적인 시도에 가까웠을 수 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여인이 “나는 당신을 떠나지 않겠다”고 말한다.
사람이 자기를 전적으로 신뢰한다고 말하는데
자기는 확신이 없다.
그 부담감과 압박이
얼마나 컸을지 상상해 볼 수 있다.
실제로,
게하시가 먼저 가서 지팡이를 올려 보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아이가 깨지 아니하였나이다.”
즉, 지팡이 프로젝트는 실패였다.
드디어 엘리사가 한 일 — 기억해 내고, 그대로 순종하다
그제서야 엘리사가 직접 가서
아이 위에 엎드려 기도한다.
“들어가서는 문을 닫으니
두 사람뿐이라.
엘리사가 여호와께 기도하고
아이 위에 올라 엎드려
자기 입을 그의 입에,
자기 눈을 그의 눈에,
자기 손을 그의 손에 대고
그의 몸에 엎드리니
아이의 살이 차차 따뜻하더라…”
— 열왕기하 4:33–34
이 장면을 보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엘리야를 떠올리게 된다.
“그 아이 위에 몸을 세 번 펴서 엎드리고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내 하나님 여호와여 원하건대
이 아이의 혼으로 그의 몸에 돌아오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엘리야의 소리를 들으시므로
그 아이의 혼이 몸으로 돌아오고 살아난지라.”
— 열왕기상 17:21–22
엘리야도
죽은 아이 위에 몸을 펴서 엎드리며 기도했다.
엎드림의 모양과 태도,
간절함의 결.
엘리사는 분명
그 장면을 기억해 냈을 것이다.
- “아, 스승 엘리야가 그렇게 했지…”
- “나에게도 그 은혜를 다시 베풀어 달라…”
지팡이를 보냈을 때는
그 기억이 떠오르지 않았지만,
죽은 아이 앞에 앉아 부르짖어 기도하는 순간
과거에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와 방식이
생생하게 떠올랐을 것이다.
그리고 그 기억대로 행동했을 때,
아이가 일곱 번 재채기하고 눈을 뜬다.
기억과 기록, 그리고 성령의 인도
우리도 그렇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는 것조차
위급할 때 기억 못할 때가 많다.
쉽게 풀릴 수 있는 문제인데도
머리를 싸매고 끙끙거릴 때가 있다.
성령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신다는 것은
때로는 이미 받은 은혜를 기억나게 하시는 것이다.
과거에 도우셨던
에벤에셀의 하나님을 기억해 내고,
그 하나님의 스타일과 디테일을 떠올리며
지금의 문제에 적용하는 것이다.
기억이 잘 안 나면
기록해 두어야 한다.
기도응답 노트, 은혜 일기, 말씀 메모…
그러나 무엇보다
항상 기도해야 한다.
기도할 때
성령께서 우리가 잊고 있던 것들을
다시 떠오르게 하신다.
엘리사도
처음부터 완벽했던 것이 아니다.
지팡이를 보내는 시행착오도 있었다.
그러나 결국
기도하는 자리에서
하나님께서 과거의 은혜와 방법을 떠올리게 해 주셨고,
그대로 순종할 때 아이가 살아났다.
하나님의 스타일 — 자녀를 훈련시키는 7의 패턴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자주 ‘일곱 번’을 사용하신다.
-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고 일곱째 날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 엘리야는 갈멜산에서 비를 기다리며
사환을 일곱 번 보내 구름을 살피게 했다. - 나아만 장군은 요단강에 일곱 번 몸을 잠그고 나서야
깨끗함을 받았다.
“나아만이 이에 내려가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요단강에 일곱 번 몸을 잠그니
그의 살이 어린아이의 살같이 회복되어
깨끗하게 되었더라.”
— 열왕기하 5:14
하나님은
곧바로 해결해 줄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기다림 속에서 자녀를 훈련시키기를 원하신다.
엘리사에게도
처음부터 다 알려주지 않으시고
시행착오를 겪게 하신 이유가
바로 그것일지 모른다.
하나님은 ‘리모컨으로 조종하는 로봇’이 아니라
주인의 마음과 스타일을 아는 종으로
엘리사를 훈련시키고 계신 것이다.
이미 주신 은혜를 기억해 내고,
그 원리를 깨달아
새로운 상황에 적용하기를 원하셨던 것이다.
왜 처음부터 다 말씀해 주지 않으실까?
솔직히 하나님께서
매번 눈에 보이게 나타나
알려주신다면
누가 못 믿겠는가.
그러나 믿음은
보지 못해도, 들리지 않아도
하나님의 성품과 능력을 신뢰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때때로 일부러 침묵하시고,
우리가 기억해 내기를,
기도하며 붙잡기를,
믿음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기를 기다리신다.
구약 시대처럼
많은 이적과 표적이 있었던 때에도
하나님은 여전히
믿음의 훈련을 시키셨다.
끝까지 믿고 가는 것 — 그것이 신앙이다
결국 이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단순하다.
살든지 죽든지
끝까지 믿고 가는 것.
하나님이 침묵하시는 것 같아도
사람에게 오해받고 원망받는 자리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믿음으로 전진하는 것.
그것이 신앙이다.
그리고 그 길 끝에서
우리는 고백하게 될 것이다.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도우셨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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