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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의 교차로 씨리즈/목회적 교차로

“다음세대보다 먼저 세워야 할 가는세대”: 성경적 세대질서와 교회의 균형 — 교차로 49편: 다음세대와 복음의 교차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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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문장 요약

다음세대 사역은 중요하지만, 성경이 강조한 우선순위는 ‘가는세대를 공경하고 세우는 질서’이며, 이 질서가 바로 설 때 비로소 다음세대도 살아난다.

1. ‘다음세대’라는 말이 없던 시절

내가 어릴 때만 해도
“다음세대”라는 단어는 거의 들어본 적이 없었다.
언젠가부터 사회에서, 특히 교회 안에서
‘다음세대 사역’, ‘다음세대 공간’,
‘다음세대에게 신앙의 유산을 물려주어야 한다’ 등등
모든 사역의 중심을 ‘다음세대’에 두는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다음세대라 하면
교회 안에서도 의견이 쉽게 하나로 묶인다.
왜냐하면 “우리 아이들, 손주들 위해서”라는데
어느 부모, 어느 조부모가 반대하겠는가?
교회 부속 건물 신축도, 교육관 건립도
“다음세대를 위해서”라 하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나 과거를 떠올려 보면
우린 별다른 혜택이 없어도
그저 밥만 굶지 않으면
친구들과 뛰어놀며 건강하게 잘 자랐다.


2. 원래 먼저 혜택을 누린 것은 ‘어른들’이었다

예전에는 자녀가 먼저 혜택을 받지 않았다.
항상 어른이 먼저였고
남는 것이 있으면 아이들에게 돌아왔다.
집에 TV가 한 대 있던 시절,
보고 싶은 만화가 나와도
어른들이 보고 싶은 프로그램이 있으면
채널 선택권은 어른의 몫이었다.
“어린이”라는 단어조차
소파 방정환 선생 이후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그 전에는 흔히 “애새끼들”이라고 불렀고
욕이 아니라 당시의 대중적 표현이었다.


3. 성경에서도 ‘다음세대 중심’은 아니었다

출애굽의 인구 카운트,
오병이어 사건의 숫자 기록 등
성경은 기본적으로 성인 남자 수를 기준 삼았다.
여자와 아이들의 숫자는 대략적인 부록으로만 언급된다.
이것을 현대 기준으로
“남성우월주의”라고 비난할 일이 아니다.
역사적·문화적 뿌리가 그렇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뿌리는
이스라엘이든 한국이든
**장유유서(長幼有序)**에 있다.


4. 장유유서: 성경이 강조한 영적 원리

성경은 왜 “머리 하얀 사람의 말”을 들으라고 명령할까?

● 젊은 왕 르호보암의 실패

르호보암은 아버지 솔로몬 시대의 노신하들의 조언을 버리고
자기 또래의 젊은 신하들의 의견만 듣다가
이스라엘을 남북으로 갈라지게 만들었다.

“왕이 노인들이 자문하는 것을 버리고
자기와 함께 자라난 어린 사람들과 의논하여…”

(열왕기상 12:8)

성경은 반복해서
나이가 많은 자의 지혜를 귀히 여기라고 말한다.


5. 그런데 교회는 거꾸로 간다

오늘날 많은 교회가
‘다음세대’를 명분으로 삼아
재정과 공간, 관심과 시간 등
교회의 모든 역량을 다음세대로 몰빵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정작 **가는세대(노년층)**는
조용히 뒷방으로 밀려난다.

  • 지팡이 짚고
  • 워커 끌고
  • 교회 버스를 타고
    주일마다 예배드리러 오시는 노인 성도들.

하지만 예배 후
그들이 교제하고 식사하며
서로를 위로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은 거의 없다.
점심 한 끼 대접 못 받고
바로 버스 태워 보내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러면서
중병에 걸려 시한부가 되면
그제서야 “기도해드리겠다”며 몇 번 찾아간다.
한 노인 성도님이 말씀하셨다.

“평소에 찾아와 주고 살피는 것이
말로 잠깐 기도해주는 것보다 훨씬 낫지.”

맞다.
중보기도는 결국 몸으로 하는 것이다.
몸과 영은 분리되지 않는다.


6. 다음세대는 오히려 ‘특혜층’이 되어 가고 있다

오늘날 교회 청소년 사역은
예배 후 프로그램, 모임, 행사 등이 풍성하다.
아이들은
어른 노인들에게 감사할 기회가 없고
자라서도
“내가 잘나서 잘됐다”고 착각하며 살기 쉽다.
이런 풍토는
교회가 “다음세대를 위한다”는 명목 아래
의도치 않게 조성한 환경이다.
그리고 이를 성경적으로 보이게 하기 위해
“여호수아 세대”를 끌어와 포장한다.


7. 여호수아 세대의 진짜 의미는 ‘다음세대’가 아니다

요즘 교회는
‘광야 2세대’와 ‘여호수아 세대’를
다음세대 사역의 근거로 삼는다.
그러나 성경적 의미는 훨씬 크다.

  • 모세 = 율법
  • 여호수아(예수아) = 예수

여호수아는 예수의 히브리식 원형 이름이다.
즉,

“율법의 시대가 가고
예수 그리스도의 시대가 온다”는
구속사적 선언
이지

오늘날 말하는 단순 NEXT GENERATION 논리가 아니다.


8. 다음세대 사역은 중요하지만, 순서가 잘못되었다

성경은 분명히 말한다.

  • 자녀들에게 부지런히 율법을 가르치고
  • 신앙의 길을 떠나지 않도록 교육하라고

다음세대를 키우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가는세대를 공경하고 섬기는 법을
다음세대에게 가르쳐야 한다.

노인을 섬기지 않는 교회에서
어떻게 신앙 전통이 이어지겠는가?


9. 진짜 다음세대를 세우는 길

  • 가는세대를 대우하고
  • 공경하고
  • 섬기는 교회

이런 교회가
다음세대에게 가장 좋은 본을 보여주는 교회이며
결국 다음세대를 진정으로 살리는 교회다.
만약 오늘 주님이 재림하신다면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 중
칭찬받는 교회가 될지,
꾸중 듣는 교회가 될지는

**‘가는세대를 얼마나 잘 섬겼는가’**에 달려 있을 것이다.

올바른 다음세대는
올바르게 가는세대를 섬길 때 세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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