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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문장 요약
섭섭함은 가정과 교회를 무너뜨리는 보이지 않는 영적 공격이지만, 바나바처럼 자리와 권리를 내려놓는 복음적 태도가 섭섭함을 녹이고 공동체를 다시 세운다.
1. 마음속에 ‘섭섭함’이 스며드는 순간
우리는 살다 보면
누군가에게 서운함·섭섭함을 느낄 때가 자주 있다.
왜 섭섭할까?
대부분 이런 순간일 것이다.
“내가 한 일에 비해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한다고 느낄 때.”
하지만 또 하나 깊은 섭섭함을 만드는 이유가 있다.
“나라는 존재의 가치가 최소로 평가받는다고 느낄 때.”
요즘 유행하는 영상 가운데 이런 예가 있다.
같은 생수 한 병도
- 코스트코에서는 25센트,
- 편의점에서는 1달러,
- 헬스센터에서는 2달러,
- 놀이동산에서는 4달러,
- 비행기에서는 6달러가 된다.
물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가치가 달라지는 것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어떤 자리에서는 무가치하게 보일 수 있지만
그것이 사람의 본질적인 가치가 낮아서가 아니라,
그 사람이 놓인 장소와 환경이 그의 가치를 드러내지 못하기 때문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정말 별 볼 일 없는 존재인가?’ 하는 생각이 스며드는 순간,
섭섭함은 마음 깊이 자리 잡는다.
섭섭함은
가정·직장·사회·교회 등
모든 공동체에서 발생한다.
특히 하나님이 세우신 두 공동체—가정과 교회—에서의 섭섭함은
관계 자체를 위협할 정도로 깊게 스며들 수 있다.
2. 가정 안의 섭섭함은 집을 얼음창고로 만든다
부부, 부모와 자녀 사이에도
섭섭함은 끊임없이 일어난다.
- 함께 사는데도 마음은 멀어질 수 있고
- 마음이 멀어지면 사랑도 식고
- 따뜻해야 할 가정이
차가운 얼음창고처럼 변한다
가정을 지키는 핵심은 단순하다.
✔ 먼저 들어주기
✔ 공감해주기
✔ “옳다, 맞다” 인정해주기
반대로
상대방의 말을 듣지도 않고
바로 옳고 그름부터 판단하면
가정은 급속도로 얼어붙는다.
3. 초대교회도 ‘섭섭함’ 때문에 흔들렸다
사도행전 6장에는
교회 안에서 섭섭함이 실제로 문제를 일으킨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
헬라파 과부들이 구제에서 빠졌다.
그래서 히브리파 성도들을 원망했다.
(사도행전 6:1–4)
그 시대 유대인들은
히브리어·헬라어·아람어 등
세 가지 언어를 사용했는데
구제 대상이 주로 히브리어권 과부들이다 보니
헬라파 과부들은 소외되었다고 느낀 것이다.
이것은 ‘고의적 차별’이 아니라
행정적 실수에 가까웠다.
그러나
구제를 못 받은 사람의 입장은 다르다.
섭섭할 수 있고
원망이 날 수 있다.
그래서 사도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곱 집사를 세워 교회의 행정과 구제를 맡겼다.
4. 직분의 본질: 섭섭함을 줄이고, 성도를 세우는 일
신약 교회에서 직분(집사·장로·권사·사역자)의 목적은 분명하다.
- 성도를 세우고
- 섭섭함을 줄이고
- 교회를 온전히 세우는 것
그러나
사람이 하는 일이기에
실수는 생기고
섭섭함도 생긴다.
그렇기에
리더들은
성도들의 마음을 세심하게 살피며
교회를 하나 되게 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것을 소홀히 하면
교회는 반드시 흔들린다.
5. 바울과 바나바—‘섭섭함’을 넘어선 귀한 본보기
초대교회에서
직분자가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인물이 바나바다.
바나바는 원래:
- 바울의 선배 사도이며
- 바울의 회심을 예루살렘 교회에 연결해 준 사람
- “착한 사람”(행 11:24)이라고 특별히 칭찬받은 유일한 성경 인물
성령께서 처음 선교사로 세우신 것도
**“바나바와 사울”**이었다. (행 13:2–3)
순서도 바나바가 먼저다.
그러나 사도행전 15장에 가면
순서가 바뀐다.
“바울 및 바나바…”
(행 15:2)
이제 사도적 리더십이
바울에게 넘어간 것이다.
✔ 그런데 바나바는 섭섭해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연스럽게
바울을 도우며
조용히 보조 역할을 감당했다.
이것이
‘착한 사람’의 탁월함이다.
바나바는 자신의 자리, 기득권, 선배 위치를
복음을 위해 기꺼이 내려놓았다.
바울 역시 바나바를 존중했기에
1차 전도여행을 문제없이 함께 감당했다.
물론 마가 요한 사건으로 잠시 갈라졌지만
후에는 다시 화해했다.
6. 오늘 교회가 배워야 할 것: 직분은 ‘대우받는 자리’가 아니다
지금도 많은 교회에서
직분을 줄 때마다
섭섭함이 생긴다.
- 시니어 성도들은 무시되고
- 새로 온 사람들이 더 빠르게 직분을 받고
- 리더십의 설명이나 배려는 적고
- 새 직분자들은 양복 빼입고 교회에서 ‘주인’처럼 행동하며
- 선배 성도들의 마음은 상처만 깊어진다
이런 교회는
보이지 않게 섭섭이 귀신이 들어와
조금씩, 그러나 확실하게
침몰하기 시작한다.
결국
성령의 역사는 사라지고
프로그램·행사·운영만 남는다.
7. 예수님은 다섯 교회를 책망하셨다—그 이유는 ‘본질’에서 멀어졌기 때문
요한계시록 7교회 중
칭찬받은 교회는 두 곳뿐이다:
서머나, 빌라델비아.
나머지 다섯 교회는
각기 다른 이유로 책망을 받았다.
특히 라오디게아 교회는
가장 혹독하게 책망받았다.
“네가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초대교회조차
단 28%만 칭찬을 들었다.
오늘날 타락한 시대를 생각하면
그 비율은 더 낮을 것이다.
8. 교회가 다시 살아나는 길: 복음의 본질로 돌아가기
직분, 규모, 행사, 프로그램이 아니라
복음 그 자체가 중심이 될 때
교회는 다시 살아난다.
교회는
- 말씀 중심
- 순종 중심
- 사랑 중심
- 이웃 섬김 중심
이렇게 되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 성도들 중 ‘섭섭한 사람’을 최소화하는 것
✔ 섭섭해도 위로하며 오해를 푸는 것
✔ 함께 주님의 일을 나누어 감당하는 것
이런 교회가
세상 속에서 진짜 빛과 소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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