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체 시리즈 보기 → 복음의 교차로 시리즈 전체 목차
● 이전 글 → 교차로 15편: 토론과 복음의 교차로에서
● 다음 글 → 교차로 17편: 맷집과 복음의 교차로에서

⭐ 한 문장 요약
긍휼은 하나님께서 겸손한 자에게 베푸시는 은혜이며, 그 은혜는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서부터 흘러가야 한다.
성경에는 긍휼에 대한 말씀이 참 많이 등장한다.
긍휼은 마치
하나님의 은혜를 불러오는 문이고,
순종은 그 은혜가 사람의 내면에 흘러들어와
저절로 열매 맺는 결과처럼 보인다.
그러나 성경은 말한다.
긍휼은 원한다고 모두가 받는 것이 아니라고.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 로마서 9:15–16
긍휼은 결국
하나님의 주권이다.
하지만 성경 속 긍휼을 입은 사람들의 모습을 자세히 보면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교만하지 않은 사람.
자기를 포기하고 하나님께 매달린 사람.
1. 바디매오, 긍휼을 울부짖은 사람
그 대표적 인물이
예수님께 외치며 달려간
소경 바디매오이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 막 10:47
바디매오는
체면을 차리거나
작게 말하지 않았다.
사람들 앞이었지만
자신을 내려놓고
소리질러 긍휼을 구했다.
사람도 저렇게 울부짖으면 마음이 움직인다.
하물며 예수님은 어떠셨을까.
바로 그의 눈을 뜨게 해주셨다.
물론
“간절히 외치는 태도 = 구원의 조건”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구원은 100% 하나님의 주권이다.
그러나 긍휼을 경험하는 사람의 공통점은 있다.
자기를 낮춘 사람.
2. 긍휼은 멀리 있는 사람보다 가까운 곳에서 시작된다
예수를 닮고 싶은 사람은
자연히 주변의 어려운 이들을
긍휼히 여기며 살아가게 된다.
그런데 긍휼도 현실을 넘어설 때가 있다.
추수감사절에 친척들이 집으로 몰려오며
집 안 공기는 순식간에 전쟁터가 되었다.
식구는 갑자기 두 배,
아내의 일도 두 배가 되었다.
나는 가볍게 말했다.
“어려운데도 와서 멀리서 고생했잖아. 좀 긍휼히 여기자고.”
그때 아내가 한마디 했다.
“나도 좀 불쌍히 여기소서.”
그 말이
망치처럼 머리를 쳤다.
아, 긍휼도 순서가 있는 것이구나.
내 집, 내 가족, 내 공동체 안에서
먼저 충족시키고 사랑해야
바깥도 긍휼히 여길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3. 교회도 같다 — 안부터 울지 않으면 밖을 돌볼 수 없다
교회 안에서도 이런 일이 있다.
- 상처받은 성도들
- 관계 때문에 마음 아픈 성도들
- 도움 필요한 청소년들
- 리더십에 실망한 성도들
교회 안의 아픔을 돌보기보다
교회 밖 사역에만 몰두할 때가 있다.
그때 나도 말하곤 했다.
“교회 안 어려운 성도들 좀 불쌍히 여기지…”
긍휼은
먼저 가까운 이들에게 흘러가야
바깥에서도 선을 이룬다.
4. 국가는? 사회는? — 불공평이 쌓일 때 원망이 터진다
긍휼의 원칙은
가정 → 교회 → 국가
모두 똑같다.
한국이 북한에 대규모 지원을 할 때
많은 국민들이 말했다.
“그 돈으로 우리 어려운 국민들 좀 도와주지.”
미국에서도
불법 이민자들에게 지나친 혜택이 돌아가자
세금 내는 국민들이 외쳤다.
“Our government, please have mercy on us too.”
(우리도 좀 불쌍히 여기라고.)
사람은 누구나
차별을 견딜 수 없어 한다.
성경도 이것을 보여 준다.
5. 사도행전 6장 — 작은 불공평 하나가 교회를 흔들다
초대교회에서도
작은 불공평 하나가
큰 원망을 일으켰다.
“헬라파 과부들이 매일의 구제에 빠졌다 하여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하니…”
— 행 6:1
의도치 않은 차별이었다.
언어 장벽 때문에 생긴
소통의 오류였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사람은
공평하지 않으면 상처를 받는다.
이것이 긍휼의 원칙이다.
6. 결론 — 가까운 곳에서부터 긍휼을 흘려보내라
예수를 따르는 사람은
긍휼을 흘려보내는 사람이다.
그러나 긍휼의 순서는
성경적으로도, 삶의 경험적으로도 분명하다.
- 내 집
- 내 공동체
- 내 나라
- 그 다음이 다른 사람
내 사람들을 먼저 살피고
내 공동체를 세우고
그 다음 이웃과 열방을 긍휼히 여겨야
긍휼이 흘러가는 길이 막히지 않는다.
긍휼은
멀리 있는 사람에게 먼저 베푸는 것이 아니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시작되는 복음의 흐름이다.
'복음의 교차로 씨리즈 > 말씀 묵상의 교차로'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한 가지 부족한 것”: 부자 청년의 마지막 보루와 제자도의 시험 — 교차로 45편: 소명과 복음의 교차로에서 (0) | 2025.12.02 |
|---|---|
| ‘생활의 염려’가 영적 둔감을 만드는 진짜 이유 — 교차로 42편: 염려와 복음의 교차로에서 (0) | 2025.12.02 |
| 감사는 삶을 지키고 비극을 막는 영적 습관이다 — (교차로 19편: 감사와 복음의 교차로에서) (0) | 2025.12.01 |
| 이기려는 말이 아니라 진리를 향한 겸손 — 나다나엘의 태도 배우기 — (교차로 15편: 토론과 복음의 교차로에서) (0) | 2025.12.01 |
| 하나님의 손에 들리면 은혜의 도구가 되는 실수와 연약함 — (교차로 11편: 우매함과 복음의 교차로에서) (0) | 2025.12.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