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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판과 복음의 교차로에서- 교차로 103편

 

장기판 위의 사람들


장기를 두다 보면 이상한 생각이 든다.
이건 단순한 놀이가 아니라
작은 전쟁 같다는 생각이다.



장기판에는 왕이 있고
졸, 사, 마, 상, 차, 포가 있다.
각각 움직임이 다르고
할 수 있는 것도 다르다.



졸은 한 칸씩 전진하다가
어느 순간 사라진다.
말은 뛰어다니며 상대를 제압하다가
자기 역할이 끝나면 내려온다.
포는 멀리서 건너뛰며 싸우고
차는 제약 없이 움직이며
끝까지 남는 경우가 많다.



같은 판 위에 있지만
모든 말의 삶은 다르다.



그걸 보다가
이 생각이 들었다.



우리 인생도
이 장기판과 비슷하지 않은가.



그리스도인은
평화로운 구경꾼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전쟁 속에 있는 사람들이다.
각자 받은 은사와 자리에서
싸우고 있다.



누군가는 짧게 쓰임받고 떠나고
누군가는 오래 남아
마지막까지 감당한다.



그래서 우리는 묻게 된다.



“왜 누구는 빨리 데려가시고
왜 누구는 끝까지 남겨두시는가”



그 질문을 붙들고 있을 때
답은 의외로 단순한 곳에서 보였다.



장기판에서는
말의 “수명”이 중요한 게 아니라

“배치”가 중요하다.



어떤 말은 초반에 사라지지만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어떤 말은 끝까지 남지만
그 이유는 더 오래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끝까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인생도 그렇다.



하나님은
누구를 더 사랑해서 오래 두시고
덜 사랑해서 빨리 데려가시는 분이 아니다.



각자의 자리를 따라
각자의 때에
부르신다.



성경을 보면
대부분의 제자들은 일찍 떠났고
요한은 오래 남았다.



요한이 더 잘나서가 아니라
그에게 맡겨진 일이
끝까지 남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준은 하나다.



얼마나 오래 살았는가가 아니라
어떤 자리에서
무엇을 감당했는가



그리고 이 전쟁에는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다.



무혈승리는 없다.



그러나 동시에
이 전쟁은 이미 시작될 때
승패가 결정된 전쟁이다.



누군가가
먼저 피를 흘렸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



그분은 전쟁의 한가운데에서

가장 먼저 희생되셨다.



그래서 우리의 싸움은
승리를 얻기 위한 싸움이 아니라
이미 이루어진 승리 위에서
각자의 자리를 감당하는 싸움이다.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싸우다가
각자의 때에
이 땅을 떠난다.



어떤 이는 빨리
어떤 이는 늦게



그러나 그 모든 차이는
길이의 차이가 아니라
사명의 차이다.



그래서 질문이 바뀐다.



“나는 왜 더 오래 남았는가”가 아니라
“나는 왜 이 자리에 남겨졌는가”



장기판 위의 말처럼
우리도 결국 내려놓는 순간이 온다.



그때 중요한 것은 하나다.



나는 내 자리를
끝까지 감당했는가



인생은 길이의 문제가 아니라
배치와 사명의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