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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도소와 복음의 교차로에서 교차로 96편

 

한 문장 요약: 교도소는 인생이 끝나는 장소가 아니라, 하나님께 돌아갈 것인가 더 깊은 어둠으로 갈 것인가를 결정하는 또 하나의 교차로 이다. 

교도소 사역 이야기를 하다가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교도소에 들어가면 인생이 끝난 것이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은 교도소를 실패한 인생의 종착역처럼 생각한다.
 
그러나 성경은 조금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하나님은 종종 사람들이 가장 낮은 곳에 있을 때 찾아오신다.
 
그래서 교도소는 단순한 감금의 장소가 아니라
 
하나님과 만나는 또 하나의 교차로가 될 수 있다.
 
 
밖에 있는 사람들은 여전히 많은 것을 붙잡고 살아간다.
 
  • 체면
  • 명예
  • 직업
  • 지위
  • 사람들의 시선
 
이런 것들이 자신을 둘러싸고 있기 때문에
 
정작 자기 자신을 바라보지 못할 때가 많다.
 
 
그러나 교도소에 들어가는 순간
 
많은 것들이 무너진다.
 
사회적 지위도 사라지고
 
자랑하던 것들도 사라지고
 
남는 것은 하나다.
 
바로 자기 자신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에게 교도소는
 
인생을 처음으로 진지하게 돌아보는 장소가 된다.
 
나는 왜 여기까지 왔는가.
 
내 삶은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가.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사람은 교차로 앞에 서게 된다.
 
더 깊은 절망으로 갈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께 돌아갈 것인가.
 
 
성경에도 감옥은 자주 등장한다.
 
요셉은 억울하게 감옥에 갇혔다.
 
그러나 하나님은 감옥에서도 요셉과 함께하셨다.
 
그 감옥은 결국 애굽의 총리로 가는 통로가 되었다.
 
 
사도 바울 역시 여러 번 감옥에 갇혔다.
 
그러나 그는 감옥에서도 복음을 전했다.
 
오히려 감옥은 복음이 멈춘 장소가 아니라
 
더 멀리 퍼져 나간 장소가 되었다.
 
 
특히 빌립보 감옥의 장면은 인상적이다.
 
지진이 일어나고 옥문이 열렸을 때
 
간수는 두려움 가운데 바울에게 묻는다.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행 16:30)
 
감옥에서
 
한 사람이
 
영원의 길을 물었다.
 
 
생각해 보면
 
교도소는 회개가 시작되기 좋은 장소이기도 하다.
 
세상에서는 죄를 숨길 수 있다.
 
변명할 수도 있다.
 
남의 탓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교도소에서는
 
이미 죄가 드러나 있다.
 
그래서 오히려
 
복음이 더 깊이 들어갈 수 있다.
 
 
이 모습은 탕자의 이야기와도 닮아 있다.
 
탕자는 모든 것을 잃고
 
돼지우리에서 비로소 정신이 들었다.
 
그리고 말했다.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로 가리라”
 
사람은 종종
 
인생의 밑바닥에서
 
아버지를 기억한다.
 
 
그래서 교도소는 단순히 범죄자들이 모여 있는 장소가 아니다.
 
그곳은
 
하나님과 사탄이 한 사람의 영혼을 두고 싸우는 교차로가 된다.
 
어떤 사람은 더 깊은 어둠으로 내려간다.
 
어떤 사람은 그곳에서 하나님을 만난다.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있느니라”
 
복음은 종종
 
가장 절망적인 곳에서
 
가장 강하게 역사한다.
 
 
맺음말
 
교도소는 사람의 자유를 빼앗는 장소일 수 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하나님께 돌아가는 자유가 시작되는 장소가 될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생각한다.
 
교도소는 단순한 감금의 장소가 아니다.

 

 
한 사람이
 
절망으로 갈 것인가
 
아버지께 돌아갈 것인가
 
결정하는
 

또 하나의 복음의 교차로이다.